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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도서 추천

비관적이지만 진리를 통찰하는 '쇼펜하우어 아포리즘'

by vocally 2024. 7. 5.

쇼펜하우어 아포리즘
쇼펜하우어 아포리즘

쇼펜하우어는 누구인가요?


독일의 철학자, 사상가입니다. 1788년 2월 22일, 유럽의 항구 도시 단치에서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19세기 서양 철학의 상징적 인물로 프로이트와 융의 심리학뿐만 아니라 존재 철학에도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는 일반적으로 비관주의자로 알려져 있었지만, 인간 생활의 비극적인 측면을 탐구하는 사상가였습니다. 1809년 독일 괴팅겐대학교에 입학하고 1811년 베를린대학교로 옮기기 전 자연과학과 철학을 전공한 쇼펜하우어는 1813년 여름 루돌프슈타트에서 박사 논문을 완성하고 제나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쇼펜하우어의 아이디어는 독창적이며, 니체 전체의 생명 철학, 실존 철학, 인류학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쇼펜하우어는 아버지는 부유한 사업가였지만 그의 유산을 생활 수단으로 이용하고 철학과 집필 활동에 평생을 바쳤습니다. 그의 세계관과 예술관은 어렸을 때부터 영국이나 프랑스 등 유럽의 여러 나라를 여행한 것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만년에는 집필 활동을 마치고 1860년 9월 21일 프랑크푸르트에서 72세의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주요 저서로는 '의지의 자유에 대하여', '독일 철학에 있어서의 아이돌의 파괴', '의지와 표현으로서의 세계', '프롭과 보충제', '자연 속의 의지에 대하여' 등이 있습니다.

 

이 책은 무엇을 전하나요?


쇼펜하우어는 괴테의 제자로서 부유한 가정에서 아버지의 뜻을 따라 사업가를 하지 않고 학자의 길을 걸었다. 인간의 멸망과 고통, 좌절에 대해 철학을 공부하고 비관을 비관하는 뜻을 내비쳤다. 그는 인간에게 살아남고자 하는 의지가 있고 그것이 우리 안에 깃든 본질이라고 여겼다. '인생은 의미가 없다. 그러므로 태어나지 않는 것이 최선이고 태어났다면 빨리 죽어야 한다'라는 말을 달고 살았던 쇼펜하우어는 지성계에서 정신병자로 몰렸다. 하지만 그의 철학 중심인 인간의 멸망을 보았고 인간이 이룩한 문화에서 인간의 본질이 지워지는 장면들을 목격하면서 그의 절망이 완성되었다.

 

절망은 절망의 모습으로 다가왔을 뿐이지만 인간은 자살하고 괴로워하고 각종 의미부여를 한다. 반대인 희망도 마찬가지다. 아무 짓도 안하고 다가가기만 했으나 각종 결론은 인간이 내린다. 신 조차도 나의 생각과 행동을 바꿀 수는 없다. 절망이 왔다고 버틸 필요 없고, 희망이 왔다고해서 꿈에 젖어 있지 말고 깨어야 한다. 희한한 것은 인간은 절망은 끝을 생각 하지만, 희망은 더 나은 희망을 요구한다. 결국, 인간은 나이가 들어가면서도 좌절과 절망은 최대한 느끼면서 행복에 대한 갈망은 더 나은 것을 바라보기에 충족되지 못한다.

철학적 관찰
철학

책의 핵심 내용


고통과 쾌락은 두 마리의 뱀이 서로 꼬리를 물고 있는 형상과 같다. 세게 물수록 더욱 세게 돌아온다. 고통이 있을수록 쾌락도 있을 것이며 그 반대도 유효하다. 따라서 삶과 죽음이 이런 모양새를 하며 죽음을 피하려 할수록 죽음은 다가 오게 되고 삶과 동시에 죽음을 향해 노력하면 오히려 멀어질 것이다. 인간은 고통에 의해서 완성되는 존재이기에 삶의 완성인 죽음에 이르기에는 충분한 고통이 따라야 죽음에 도달한다. 죽기 위해 사는 것이다. 생물의 완성은 죽음이다.

 

낙관을 비판하고 고독과 사색에서 피어나는 어두운 인생의 비관적인 것으로 잉태해 성찰을 옹호하는 쇼펜하우어에게서도 낙관적이고 진취적인 면이 있다. 인간은 사유하는 단독적인 동물이므로 예의가 발라야 한다. 인격적인 덕목이 수탈을 일삼는 현재의 만연한 사회적 관념보다 중요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드물다. 나이 마흔이 넘어 자의식을 굳게 잡고 있는 사람은 상대방을 배려하고 내 고집은 접어 두며 나보다 훌륭한 사람을 만났을 때 시기하지 않는다. 자의식이 있으면 내가 나를 부끄러워 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자연스레 사람들도 나를 부끄러워 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원하는 나로 사는 것이 불행밖에 남지 않는다는 것을 모른 채 그렇게 살아간다.

 

마르크스의 자본론과 애덤스미스의 국부론, 다윈의 진화론과 모세의 창조론과 같이 각자 귀결되는 본질적인 목적지는 같으나 의견이 나뉘는 것처럼 쇼펜하우어도 비관과 죽음을 더 많이 이야기 하지만 결국에는 인생을 어둠 속의 암흑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속의 불빛을 바라보는 관점으로 접근한다. 무엇을 하든 고통이 따르겠지만 그 속에서도 사랑해야하고 배려해야하며 존중해야 한다고 한다.

 

쇼펜하우어는 죽음을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들의 완성이라고 한다. 살아가면서 겪는 고통과 인고의 시간, 불행, 고난, 역경들은 필수불가결하며 그것이 없는 찰나의 상태에 인간은 행복이라는 함정에 반드시 걸려든다. 불행이 없는 행복한 순간과 죽음이 없는 불멸의 육신, 무한한 시공간의 창조에 놓여져 있으면 그것을 인간은 천국이라고 한다. 경험해보지 못했고 그것을 너무 갈망하기에 행복한 것으로 비춰지겠지만 실제로 맞닥뜨리면 바로 권태로움이 찾아와 인간은 다시 피와 살을 헤집는 전쟁을 일으킬 것이다. 결국 고통과 불행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내려놓음으로써 인정하되 눈을 뜨자마자 수많은 불행이 찾아온다는 것을 예측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노쇠하여 병마가 찾아오고 하는 일마다 예상치 못한 돌부리에 걸린다고 하더라도 불멸의 권태로움에 놓여질 그 순간보다 이것이 행복한 과정임을 인지 해야 한다. 불행을 자체로 당연히 받아들이고 지나간 불행을 붙잡아 놓아주지 못해 고통스러워 한다면 다시 닥칠 수많은 불행들을 감당 할 수 없기에 여기로 왔고, 지나간 불행은 현명하게 보내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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